게임 스티리머와 시청자의 상호 작용

2020. 10. 3. 14:03Games

게임은 실제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게임의 원형이 되는 놀이부터 관람과 함께해온 '보는' 콘텐츠이기도 했다. 보는 게임은 게임 플레이 현장과 관람의 현장이 일치했던 직접 보기에서 스포츠의 영역으로 편입된 e스포츠나 게임 스트리밍으로 대표되는 미디어를 통한 간접적 게임 보기에 이르렀다.

 

 

이 글은 이러한 간접적 관람이 게임의 주요한 향유 방식의 하나로 떠오른 현상에 주목했다. 게임 스트리밍은 하는 콘텐츠인 게임을 본다는 것 외에도, 목표 달성이나 경쟁 등이 중요하지 않은 게임의 향유 방식을 보인다. 그렇다면 게임 스트리밍은 게임을 할 때와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다. 이 글은 게임 스트리밍이 이전의 게임 보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관람자 들의 ‘참여’와 이를 통해 발생하는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따라서 실제 게임 스트리밍 시청 상황을 관찰해 어떠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는지를 분석하고, 실제 시청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상호작용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자들은 ‘채팅’과 ‘도네이션’이라는 장치를 통해 공동 시청자 및 방송의 진행자인 스트리머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단순한 시청 감상에서부터 스트리머의 게임 플레이에 훈수를 두며 자신의 게임 지식을 뽐내거나, 게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스트리머와 같은 화면을 보며 그의 게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한, 게임 텍스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미션’을 스트리머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며 게임을 저항적으로 해독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션은 게임 내에 설정된 목표의 달성 또는 경쟁이 부각되지 않는 창조적 게임 플레이 행위로, 게임 스트리밍을 다른 게임 보기들과 차별화한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스트리머와 함께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게이머’였다가, 익명의 시청자들과 함께 일인 미디어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청자’이기도 했다가, 스트리머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의 방향을 제안하며 때로는 직접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 방송의 ‘공동 창작자’이기도 한 변화무쌍한 존재가 된다. 한편 게임 콘텐츠 이외의 일상적 행위의 공유는 게임 스트리밍에서의 상호작 용과 오프라인에서의 상호작용 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먹방이나 채팅 방송 등으로 스트리머와 평범한 일들을 공유하거나, 생일이나 취업 등 평범한 일상의 이벤트를 공유하는 것이다.

 

고정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고 이것이 기존 텔레비전 보기와 같은 일상적 습관으로 자리 잡으며, 게임 스트리밍 시청자는 스트리머와 공동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듯한 사회적 현존감을 느끼게 된다. 게임이 보기의 영역으로 편입된 데에는 게임 자체의 변화도 한몫을 한다. 모바일 기기를 기반으로 하는 아케이드류의 캐주얼 게임 역시 성행 중이지만, PC 기반의 게임들은 나날이 고사양의 기기를 갖추고 오랜 시간을 들여 게임을 ‘톺아 볼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회차 플레이는 가성비를 생각하는 게임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추어 출시된 시류를 따르는 상품이기는 하나, 동시에 게임에의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게임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열정 모두를 갖추어야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변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는 게임이 대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특히 e스 포츠는 게임으로 얻을 수 있는 궁극적 즐거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미디어라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e스포츠는 게임의 쾌락적 본질인 성취감을 감추고 기술과 피지컬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관찰자의 판타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으며, 단순한 대리만족 차원의 즐거움만이 남은 e스포츠에서 시청으로 획득한 쾌락은 개인의 게임 플레이에서 얻기 어려우며, 이는 다시 게임과 개인의 성취감을 멀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생산한다. 모종의 이유나 상황에 의해 즐거운 감정을 직접 소비할 수 없는 경우, ‘대신’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를 시청함으로써 그 쾌락의 일부를 경험한다는 점은 e스포츠와 게임 스트리밍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게임 스트리밍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용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상호작용적’ 미디어다. 주어진 텍스트가 아닌 다른 요소들을 목표로 삼아 플레이하는 ‘파고들기’나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게임에 변형을 가한 ‘모드’ 등 게임이 기 본적으로 가지는 생산적 특성과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감에의 욕망이 미디 어와 결합되어 나타난 전혀 새로운 놀이로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행위자의 모습으로 게임 스트리밍이라는 콘텐츠를 ‘함께’ 완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쾌락의 본질 중 하나인 개인의 성취감이 전면으로 나선다.

 

게임 스트리밍 시청자는 정해진 시간에 어떠한 스트리머의 방송을 시청할까를 고민하는 선택의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트리머에게 새로운 의 견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자 자신의 의견을 확산시킬 수 있는 도구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개발사에서 정해준 게임의 스토리 라인을 따르지 않아도, 경쟁의 굴레에서 한 발 벗어나 있어도 즐거우며 그것 자체가 재화를 생 산하는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한편 게임 스트리밍의 인기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동적, 소비적 주체로 머물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물론 게임 스트리밍은 ‘게임 방송’으로 불리기도 하며 작동 방식 자체는 많은 부분 미디어나 자본주의 질서 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놀이를 생산적인 일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생산성과 놀이를 절충하는 자본주의적 호모루덴스라는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게임 스트리밍의 시청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관찰해 게임 보기의 즐거움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개념을 살펴보기 위해 각종 이론적 논의를 검토하는 한편, 게임 스트리밍 시청자와의 인터뷰 및 실제 시청 상황의 참여관 찰에서 얻은 정보를 연구 결과의 분석에 활용하였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는 가운데 드러난 다음의 한계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먼저, 이글이 관찰 대상으로 삼은 게임 스트리밍의 송출 플랫폼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이글의 연구 대상의 범위를 제한했다는 지적이 될 수 있다. 물론 트위치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긴 게임 스트리밍 시간을 보이는 플랫폼으로 연구 대상으로서 나름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지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리카 TV 역시 게임 스트리밍 송출 채널로서 트위치와 함께 큰 축을 이루고 있으며, 동영상 미디어 플랫폼으로서 큰 역할을 하는 유튜브 역시 게이밍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플랫폼 별 차이를 반영해 거시적인 게임 스트리밍 지형을 살펴보았다면, 게임 스트리밍의 특징을 더욱 부각하고 그 의미를 보다 포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그러므로 추후 진행될 게임 스트리밍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플랫폼별 특징도 함께 고려돼 어 반영될 수 있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또한 게임 보기를 실시간 생방송인 게임 스트리밍으로 한정해 유튜브 등을 통 해 소비되는 게임 스트리밍의 편집본에 대한 논의를 다루지 못한 점 역시 한계로 들 수 있다. 스트리머에 따라 다르지만, 게임 스트리밍은 일반적으로 주 3~7 회, 회당 3~8시간의 긴 분량을 가진 콘텐츠이다. 때문에 게임 스트리밍의 애청 자조차 매일 모든 방송을 챙겨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온라인을 통한 동영상 소 비가 주로 유튜브를 통해 편집된 영상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스트리밍 의 전체 영상 소비와 더불어 편집본의 소비 역시 논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이 글은 위와 같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게임 보기의 즐거움을 기존 연구 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는 시도로서 가치를 지닌 다고 생각한다. 특히 게임 스트리밍의 미디어적 이용 동기를 파악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실제로 어떤 질적 이용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게임, 나아가 그 원형인 놀이 및 유희와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다는 점 또한 의의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